[최보식 선임기자 congchi@chosun.com , 조선일보]
“얼마 전 ‘장수경영의 지혜’란 책을 냈는데, 대체 무슨 지혜를 알려주시렵니까?” 물으니, “내가 살아온 삶을 말한 것일 뿐 잘났다고 쓴 것은 아닙니다” 하고는 입을 다물었다.
이 단구(短軀)의 노신사에게 1시간 반 질문하는 동안 난 거의 녹초가 되어가고 있었다. 우리 나이로 미수(米壽·88세)인 박승복 샘표회장의 말은 짧다. 다음 기록은 그런 단답을 일정 부분끼리 합쳐놓은 것이다.
“샘표 공장을 맡게 된 것은 피치 못했어요. 1976년 부친이 별세한 뒤였어요. 내 아우가 아버지 밑에서 오래 일하고 있었어요. 난 동생을 시키려고 했어요. 간장 만드는 일을 제일 잘 알 게 아니에요. 그런데 ‘형님이 계시는데 전 죽어도 안 맡습니다’고 버텨요.”
그는 함흥공립상업학교 졸업 직후 한국식산은행(산업은행의 전신)에 들어가 25년간 은행원으로 일했다. 그 뒤 10년간 정부에서 근무했다. 재무부기획관리실장, 국무총리 행정조정실장까지 지낸 뒤 물러났다.
“동생과 그렇게 며칠 승강이를 벌이고는 내가 사장을 맡았어요. ‘경영이 별거냐. 보따리 장사도 경영이고 집안을 일구는 것도 경영이지’ 하는 마음이었지요. 사장 취임 후 100일 동안 어떤 지시도 하지 않고 공장 구석구석을 다녔어요. 100일째 되는 날 전 직원을 모아놓고 처음 조회를 했지요.”
―기업 운영에서 무엇이 가장 중요하다고 봅니까?
“국민에게 신뢰를 잃지 않는 게 가장 중요하죠. 고객의 마음을 잃으면 아무것도 안 됩니다. 고객이 없는데 살아남을 수 있어요? 어떻게 하면 사랑받을 수 있나? 그건 좋은 제품을 만들어야죠. 먹어보고 ‘이거 못 먹겠다’ 하면 끝납니다. 선친은 간장과 같은 기본 먹을거리는 지위나 재산 여부를 떠나 똑같이 좋은 것을 먹어야 한다고 생각했지요. 간장 등급이 없이 만들었어요. 그래도 간혹 간장 만드는 사장 집이니까 더 맛있는 간장을 먹지 않겠나 생각들 합니다.”
―샘표는 감원이나 구조조정으로 직원을 내보낸 적이 아직 없다고 들었습니다.
“그럴 이유가 없어요. 회사가 자꾸 커가니까. 구조조정을 안 해도 정년이 되면 나갈 사람 다 나갑니다. 이 회사에 들어오면 모두들 종신 일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가족적인 사풍이 있어요. 난 사장 시절부터 이래라저래라 지시하는 게 없었어요. 어머니가 밥하라는 말을 듣고서 밥합니까, 알아서 밥하지요. 직원들 스스로 찾아서 일을 하도록 했어요. 동생인 전무에게 직원 채용 등을 다 맡겼지요. 맡겨야 책임지는 거죠. 맡긴다는 것이 참 무서운 겁니다. 100% 맡기는 데 최선을 다 안 할 도리가 있겠어요.”
―이번에 쓴 책을 보니, “젊었을 때는 ‘최고’를 중시했지만 이제는 ‘최선’을 더 높이 친다”고 했더군요.
“젊은 시절에는 우리 사회 전체가 뒤떨어져 막 좇아가야 했지요. 의욕적으로 최고를 찾아가야 했습니다. ‘최고’라는 것은 상대방과 비교할 때 쓰는 말이지요. 하지만 이제는 어느 정도 따라왔으니, 차분해질 때가 됐어요. ‘최선’은 상대방과 관계없이 나 자신에게 부끄러움 없이 다 하는 것이지요.”
그의 ‘살아온’ 말은 음식으로 치면 요즘 독자들의 미각을 자극할 ‘농비신감(��肥辛甘: 진한 술 기름진 고기 맵고 단 맛)’과는 거리가 먼 쪽일지 모른다. 하지만 풀뿌리를 씹어 담백한 맛을 느끼면 그것이 진미(眞味)라는 주장도 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9/09/27/200909270066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