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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결혼제도에 대한 상상 : 친족에서 개인으로

일시
2013년 04월 29일 15:00
장소
국회입법조사처 대회의실

프로그램

4월공개포럼_초대장

후기

발제 <프랑스 공동생활약정(PACS)법의 제도화 검토를 중심으로> 장서연,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

최근 한국사회의 혼인 및 가족에 대한 사회적 변화를 살펴보면 우리나라의 주된 가구유형이 4인 가구에서 2인 가구로 변화되었고 조만간 1인 가구가 주된 가구유형으로 등장할 전망이라고 한다. 평균혼인연령 또한 상승하고 있는데, 초산연령이 초혼연령보다 높은 경우는 현재 OECD국가 중 한국과 일본이 유일하며, 이는 전통적 결혼관에 따라 혼인하지 않은 상태에서의 출산을 비정상적이며 동시에 비도덕적으로 간주하는 경향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그 결과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국가의 출산율은 다른 OECD국가들에 비해 상당히 낮은 수준으로, 이는 출산이 결혼에 얽매여 있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는 평가가 있다. 또한 우리나라의 경우 제도적 차원에서 동거형태의 가정을 보호하거나 동거 중의 자녀 출산을 법적으로 지원하는 체제는 갖추고 있지 않은데 반해 유럽의 다수 국가들은 전통적 결혼이 아닌 가구형태에 있어서 비제도화 성향을 넓게 포용해 왔으며, 이들의 권리와 의무, 책임 등에 대한 관심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사회를 발전시켜 왔다.

이처럼 우리사회에는 전통적 법률혼 외에도 사실혼, 비혼동거 커플, 동성 커플, 장애인생활공동체 등 다양한 생활공동체가 존재하고 있지만, 법률혼을 통한 가족관계 외에는 전혀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하는 법의 사각지대에서 사실상의 관계로만 머물러 있다. 다양한 생활동반자관계는 누군가에게는 기존 법률혼이 가지고 있는 관계에 대한 경직성 또는 불합리성으로 인한 대안적 선택의 문제일 수도 있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혈연중심의 전통적 가족이 될 수 없는 법적 소외 계층의 문제일 수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결혼 및 가족에 관한 가치관의 변화에 따라 전통적 법률혼이 아닌 다양한 관계에 대한 욕구가 높아지고 있는 점에 비추어 앞으로도 법률혼 외의 다양한 생활동반자관계는 점차 증가할 것으로 보이며, 이들의 관계에 대한 법적 문제와 법적 보호의 필요성도 점차 대두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맥락에서 ‘혼인의 중립화‘라는 관점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혼인의 중립화는 법률혼도 다양한 남녀관계 중의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실혼 동거는 당사자의 자유로운 선택에 의한 것이며, 남녀가 혼인 외의 삶의 방식을 선택하는 경우라도 이들에 대한 법률적 효과 부분은 양적인 것에 불과하여야 할 것이며, 법률혼을 특권화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새로운 사실혼과 동거를 통합하는 동거계약법의 제정 등은 사실혼과 동거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제안하고 있다.

해외 여러 국가에서는 이미 법률혼외에 생활동반자관계에 대한 입법이 이루어지고 있는 추세이다. 파트너십 관련한 입법은 각국의 문화와 상황에 따라 다양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프랑스의 생활공동약정의 입법례만 보아도 파트너십의 상을 어떻게 정립할 것이냐에 따라 약정의 성립요건에서부터 성립 후 파트너 사이의 신분상 효과, 파트너의 상속권 인정 문제, 파트너십을 해소하는 방식이나 사유, 파트너십 해소 후 상대방의 부양청구권과 자에 대한 면접교섭권 인정 문제, 상대방의 자에 대한 친권문제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 차이점을 드러내고 있다. 이러한 차이점들은 국내에서 파트너십 관련한 법률을 마련할 때도, 핵심논쟁이 될 지점들이 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제3자에게 효력을 미치는 신분관계의 변동, 파트너의 상속권 인정여부 및 상속순위의 문제, 자에 대한 공동입양 및 공동친권의 문제가 가장 논란이 될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국내의 파트너십 관련한 법률을 제정하기 위해서는 각국의 입법례에 대한 연구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 요구되는 대안적인 파트너십의 상은 무엇인지, 또는 현재 존재하는 파트너십의 관계들은 어떤 모습인지, 다양한 연구와 고민들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토론 <새로운 관계, 새로운 제도에 대한 사회적 고민이 필요하다> 진선미, 민주통합당 국회의원

사랑하는 사람과 삶을 공유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가족은 개인에게 심리적, 경제적 안정을 제공하고 회적 안정과 통합에 기여한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가족을 꾸리지 않는다는 것은 사회적으로도 우려스러운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혹자는 결혼하지 않는 세태를 비판한다. 그러나 결혼을 기피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결혼의 가치와 의미를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결혼을 안 하고, 못 하는 것이다. 위기의 원인은 ‘결혼하지 않는 사람들’이 아니라 ‘결혼제도’이며 사회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제도의 지체’이다. 오늘날 결혼 기피의 해결책은 경직된 결혼 제도 이외에도 다양한 방식으로 사랑하는 이들의 관계를 인정하고 지원하는 방식을 만드는 것이다.

동반자등록을 입법하는 것은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법안을 만들고자 하면 일단 동반자 관계가 법원이 관할하는 ‘가족관계등록’의 영역인지, 안전행정부가 담당하는 ‘주민등록’의 영역인지, 아니면 기존의 ‘가족관계등록’도 ‘주민등록’도 아닌 제3의 명부로 등록해야 하는지를 결정해야 한다. 기존 가족관계등록을 이용할 경우, 혈연과 혼인 중심으로 이뤄져 경직적인 가족관계등록부에 동반자등록을 해야 하는 문제가 있고, 주소와 세대구성을 중심으로 등록하게 되어있는 주민등록 또한 권리를 부여한 특정한 관계를 등록하기엔 적절하지 않다. 그렇다고 제3의 새로운 명부를 만드는 것은 행정적 비효율의 문제를 피하기 어렵다. 이러한 난관은 우리 법과 행정체계가 얼마나 뿌리깊게 혼인과 혈연 가족 중심으로 짜여 있는지를 보여준다. 우리 법의 상상력은 아직 다양한 가족을 포용하지 못하고 있다.

발제문의 프랑스와 독일 생활동반자등록 비교연구에서도 보듯이 생활동반자에게 어떤 권리와 의무를 부여할 것인지도 정해진 답이 없다. 사람들의 필요와 우리의 헌법에 비춰 어떤 권리와 의무를 부여해야 할지, 결혼 또는 혈연과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달라야 하는지 이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 시민들의 자유와 한국 사회의 통합과 안정, 다음 세대의 생산을 위한 길이 될 것이다.

우리 의원실에서는 향후 생활동반자등록법(가칭)을 제정할 것이다. 법 자체가 제정되는 것도 목적이지만, 제정 과정을 통해 우리 사회의 가족과 결혼이 처한 현실을 재진단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함께 살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어떤 제도적 디자인이 필요할지 고민할 것이다. 생활동반자등록제도는 단순히 동거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나, 결혼 제도에 포함되지 못한 동성커플만의 문제는 아니다. 우리 사회에서 ‘가족제도’가 갖는 의미의 중요성만큼이나 현재의 가족과 결혼 제도의 위기는 중대한 것이다. 그런 만큼 새로운 변화에 적절히 대응할 유연하고 포용력 있는 제도를 고민하는 것은 우리 모두 머리를 맞대고 지혜를 모아야 할 일이다.

토론 <결혼이 외면당하는 이유> 윤단우 [결혼파업, 30대 여성들이 결혼하지 않는 이유] 저자

세계 최저 수준의 출산율 배경에는 기혼여성들이 아이를 적게 낳는 것도 있지만 그보다는 결혼 적령기 여성들의 결혼 기피가 있다. 2012년 여성의 초혼 평균 연령은 29.4세를 기록해 전년에 비해 0.3세 상승했고, 특히 서울지역 여성의 초혼 연령은 30.2세를 기록해 처음으로 30세를 넘었다. 언론에서는 연일 미혼여성들의 결혼기피현상을 문제 삼는다. 적령기 미혼여성들이 결혼을 기피하니 자연히 여성들이 낳는 아이의 수가 줄어들고, 따라서 한국이 저출산 고령화 시대로 접어들었다는 분석이다.

사실 미혼율의 증가는 비단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 세계적인 현상이다. 그렇다면, ‘혼기가 꽉 찬’ 여성들이 여전히 미혼으로 남아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전 세대의 여성들은 결혼을 결심할 때 행복이라는 가치를 결혼의 잣대로 삼지 않았다. 결혼은 선택이 아니라 당연히 치러야 할 통과의례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의 30대 여성들은 이전 세대와는 다른 행동 패턴을 보인다. 경제적 자립이 가능해지고 정치적 자유를 보장받으면서 이제 배우자를 까다롭게 고르기 시작한 것이다.

반면 비싸진 결혼, 슈퍼맘을 강요하는 육아, 부계혈통 중심의 불평등한 가족제도는 결혼의 상품가치를 떨어뜨리고 있다. 가정 내에서 딸의 지위는 상승했지만 아내로서, 며느리로서, 엄마로서 여성은 여전히 불리한 지위에 있으며, 결혼을 선택한다는 것은 이 불리함을 감수한다는 뜻이다. 여성의 결혼은 부계혈통을 근간으로 하는 가부장사회에서 여전히 ‘남성 가족에의 편입’이라는 성격을 지닌다. 반면, 남성 중심의 가족제도 안에서 핵가족이라는 형식을 취한다 하더라도 남성의 결혼은 ‘세대의 독립’이 아닌 ‘가족의 확장’일 뿐이다.

사회의 변화속도에 비해 결혼의 변화는 미미하다. 바야흐로, ‘왜 결혼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구구절절한 설명이 필요해진 것이다. 단기간에 한국의 결혼과 가족제도가 변화하지는 않겠지만, 이제부터라도 개인이 행복한 결혼이란 무엇인지를 고민할 필요가 있다.